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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헤어스타일과 신발, 장신구

패션의 역사 by 마운틴러버 202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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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스타일과 머리 장식

이 시대 여성들에게는 깃털로 장식한 커다란 모자를 쓰는 것이 유행했다. 큰 모자는 영국 디자이너 루실의 이름을 따서 루실이라고 불리거나, 당시 패션리더였던 여배우 릴리 엘시가 메리 위도우라는 연극에서 썼던 모자라고 하여 메리 위도우 해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신발

남성들은 측면에서 단추로 잠그거나 고무줄이 든 헝겊을 대어 신고벗기 편리한 형태로 되어 있는 발목길이의 부츠, 혹은 앞 끝이 뾰족하거나 네모난 구두를 신었다. 일반적으로 색상은 검은색이었으며 갈색이나 흰색 구두도 있었다.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콤비내이션은 스포츠용으로 신었다. 구두창은 고무로 되어 있고 위는 면직물(캔버스)로 만든 테니스 슈즈도 나왔다.

여성 구두는 중간 높이의 힐이 달린 단화영이나 가죽헝겊으로 만든 것 등이 있었고, 비단 펌프스는 결혼의상이나 이브닝웨어에 맞추어 신었다. 그 밖에 비단으로 만든 슬리퍼 형의 신발도 유행하였다. 아름답게 장식된 스타킹도 패션의 중요 요소였다.

 

장신구

평상복에서까지 고가의 보석이 많이 착용되었다. 티아라(보석 박은 머리장식관), 목걸이, 특히 여러 줄의 진주로 된 초커, 팔찌, 브로치 그리고 반지들이 모두 착용되었고, 가짜 보석을 착용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심미안으로 간주되었다. 모피 장식은복식사에서 언제나 부의 상징이었으나 모피 사용의 대중성에 있어 1900년대를 따라갈 시대는 없었다. 흰 담비와 검은 담비 털이 인기였기만 후에는 여우 털도 대중화 되었고, 어깨를 두르는 여우 털과 털모자,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털 머프스(토시)도 많이 착용했다. 여러 가지 소재로 만든 백이 의상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해 사용되었는데, 끈의 길이가 다양해졌으며 장식용 술이나 고리 등으로 잠글 수 있기 하였다. 화려한 색상의 비즈로 꽃무늬를 비롯한 자연물 또는 건축물, 풍경 등을 표현하여 정교한 아름다움을 나타내 주었다.

 

헤어스타일과 머리장식

여성의 모자는 스커트가 홀쭉하게 좁아짐에 따라 더욱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챙이 넓고 깃털 장식을 한 커다란 모자나 크라운이 높고 챙이 좁은 모자, 토크형의 모자 등이 있었다. 베일은 얼굴의 일부를 가리는 것에서부터 베일을 모자의 뒷부분에 드레이프 시키거나 머리를 전부 덮는 것 등이 있었다.

남성에게는 1910년부터 모자 중심이 움푹 들어간 펠트로 만들어진 중절모자가 애용되기 시작하였다. 독일 홈부르크 남자들이 처음 쓰기 시작하여 많이 사용하게 된 홈부르크 모자도 이 시대에 애용되었는데, 양 옆 행이 위로 말려올라가고 크라운 앞, 뒤쪽이 들어간 것이다. 영국 남성들이 많이 사용한 더비는 딱딱한 모자로 크라운이 둥근 것이 특징이다. 미국 남성들에게 사랑받은 보울러는 더비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챙이 좀 더 넓고 승마 시 사용되었다.

 

신발과 장신구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면서 스타킹과 신발이 중요한 품목이 되었다. 스타킹의 색상은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일상복에는 검은색을 주로 신었고 여름철이나 테니스를 할 때는 흰색을 신었다. 스타킹의 재료에는 면, 실크, 모가 이용되었고 저녁 옷차림에서는 스타킹에 레이스 장식을 하였다. 신발은 호블 스커트를 입을 경우 발목에 리본 끈으로 묶는 탱고 슈즈를 신었다. 그 밖에 단추나 끈으로 채우는 목이 긴 부츠와 앞이 뾰족하고 굽이 높은 구두가 유행하였다. 1916년에는 적지 않은 수의 여성들이 직, 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남성 노동력을 대신하는 고된 노동은 편하고 튼튼한 기능성 신발을 요구했다. 우아한 맵시를 뽐내는 고급구두가 여전히 패션잡지의 면면을 장식하곤 했지만, 광고 지면을 채우는 신발은 글도 굽이 낮고 튼튼한 구두였다. 구두는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면서 마치 여성들이 모두 상을 치르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중요한 액세서리로는 털로 만든 둥근 베개 모양의 토시와 가죽이나 헝겊의 핸드백, 흰 장갑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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