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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세계 대공황기, 제2차 세계대전_패션의 시대적 배경

패션의 역사 by 마운틴러버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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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공황기:대공황과 초현실주의 예술, 모더니즘의 시대

 

세계 대공황의 시대

1929년 뉴욕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세계는 대공황에 빠져들어 갔다. 이로 인해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고취되었고 전 세계에는 실업자가 거리에 넘쳤다. 1차 세계대전 종결 후 세계를 휩쓴 혁명에 이어 대규모 노동운동이 발생했다. 미국에서는 산업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기운이 일어났고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파시즘은 이탈리아에 뿌리를 내렸으며, 독일의 히틀러가 나치당을 창당하여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고자 했고 결국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오락산업의 증가와 영향

1933년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뉴딜 정책은 경제난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1930년대 후반에는 대공황에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이 미국사람들에게 새로운 생활방식을 제공하면서 오락산업이 증가하였다. 특히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캐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과 같은 은막의 스타들은 일반 여성들에게 패션의 영감을 제공하였다. 대중의 오락거리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재각 영화가 상영되었으며 <백설공주><미키마우스>등의 디즈니 만화가 인기를 끌었다. 또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상영되어 현대생활의 물질만능과 기계주의를 비판하였다.

 

초현실주의 예술

1930년대를 지배한 예술의 흐름은 초현실주의였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통해 표출된 인간성의 파괴적 측면에서 도피하여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심층심리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살바도르 달리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미술 양식은 패션디자이너 엘자 스키아파렐리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왕실과 카페문화

1936년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 8세가 평민인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한 일은 세기의 사랑으로 기억되었다. 왕실이나 부유층이 파티나 테니스, 승마 혹은 스키장에서 입었던 패션은 잡지나 신문에서 흥밋거리로 게재되었고 대중은 이들의 패션을 모방했다. 특히, 심슨 부인의 아메리칸 스포츠 룩은 영국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시민들은 여가시간에 잘 차려입고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에 열중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다.

 

모더니즘적 사회현상

모더니즘은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서구예술에 풍미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운동, 혹은 예술의 작품형식과 사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기계 시대의 도래와 함께 대량 생산 시스템에 적합한 형태의 창출이 불가피해졌고,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따른 형태를 현대 디자인으로 완성시킨 것은 1920년경이다. 월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바우하우스의 이념에 나타난 간결하고 기하학적이고 기능적인 형태의 조형물들이 탄생하면서 사회 전반에 모더니즘적 특징들이 나타났다. 이성에 기반을 둔 객관성의 논리로 무장한 모더니즘은 20세기 전반의 시대정신을 형성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객관성의 논리에 따라 모던시대는 저네성, 보편성, 총체성, 통일성 등을 중시하여 가장 이상적인 하나의 규범과 체제 아래 모든 삶들이 종속되는 사회구조를 형성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전쟁의 규제 속에 꽃 핀 문화

2차 세계대전(1939~1945)

1920년대 싹튼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파시즘이 1930년대에 만개하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다. 1941도라 도라 도라암호명을 쓴 일본의 미국 진주만 기습공격을 기점으로 전쟁은 전대미문의 세계대전으로 비화됐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추축국과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연합국이 격돌한 전쟁의 초반은 추춫꾹이 우세했으나 연합군의 반격과 피점령 민족의 무장투쟁에 의해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1940년대 전반기를 광기로 장식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1945년 종전은 대부분의 식민지 해방을 가져왔다. 한국,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 모두 독립했고, 중동과 아프리카도 독립대열에 합류했다. 수천년을 나라 없이 EJehs 유태인도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위한 인류의 염원은 UN탄생으로 결실을 맺었다.

 

오락과 스포츠

전쟁중 여전히 오락은 있었다. 주크박스에서는 언제나 저음 가수 프랑크 시나트라의 레코드가 돌아가고,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는 드라마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카사블랑카>, <우리 생애 최고의 해>와 같은 전쟁영화가 인기를 끌었으며, 미국에서는 야구가 전 국민의 인기를 끌면서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이 스포츠에서 백인과 흑인 간의 장벽을 깨기도 하였다.

 

의복의 배급 규제

2차 세계대전 중 파리의 함락으로 디자이너들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잃게 되었으며 영국과 유럽 대륙 간의 고립도 심화되었다. 1941년 영국에서 무역청이 직물사업에 대한 규정을 발표했다. 유틸리티 클로스(utility cloth)는 옷감을 절약해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디자인의 의상으로, 민간인들은 각각 20개의 배급권을 발급받았고 주어진 배급권으로만 의복을 충당할 수 있었다. 이 규정은 모든 의류 생산업자들에게 각 종류의 의상마다 정해진 양의 직물만 사용하도록 규제하고 한 의류회사가 1년에 50가지 스타일 이상 생산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규제로 옷감의 양을 15% 절약할 수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패션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나일론의 보급

전쟁기간 동안 파리와 단절된 미국은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뉴욕에 그들의 의상실을 열었다. 미국은 패션 창조에 있어서 그 영향력을 계속 넓히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스타킹의 부족함을 ㄷ신하기 위해 발목 길이의 목양말인 바비 삭스(bobby sox)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40년부터는 나일론이 출현하여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나일론이 가진 내구성과 탄력성, 가벼움, 손쉬운 세탁 등은 복식 발전에 또 다른 가능성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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