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시기
의복
여성복식
밀리터리룩
1930년대 후반부터 유행을 예고했던 밀리터리 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 세계 여성복으로 결정지어졌다. 각진 어깨, 짧은 스커트의 테일러드 수트 스타일인 밀리터리 룩은 이제 완전히 실용적인 기능복이 되었고, 그것이 모드로 변천되었다. 전쟁기간 중에 하류층의 일반시민 다수가 군대에 입대하여 정장을 입어 볼 기회가 생겼고 비교적 품질이 좋은 의복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은 시민복의 근대화를 유도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도 단순하고 기능적인 의복을 일반대중에게 보급시킴으로써 패션을 특수계층만의 것이 아닌 일반대중에게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전쟁 중 미국은 파리와 패션교류를 할 수 없었으므로 미국 출신의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파리에 의존하지 않고 선도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여 처음으로 미국이 세계패션을 주도하게 되었다. 스포츠용 의복과 캐주얼한 의복이 젊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개발되었고, 미국의 디자이너 및 의류전문인들이 고안한 미국 여군제복은 세계적으로 격찬을 받았다. 특히, 클래어 맥카델은 스포츠웨어나 캐주얼웨어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의 디자이너들은 미국에 빼앗겼던 패션의 주도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저명한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모드발표무대를 만들었다. 1940년 1월 파리에서 첫 번째 컬렉션이 열렸는데, 여자 테일러드 수트는 무릎 바로 아래 길이의 스커트에 재킷은 약간 부드러운 라인으로 군복의 영향을 덜 받는 형태였다. 그러나 1944년까지 점차 스커트의 폭은 좁아지고 어깨는 각이 진 밀리터리 룩이 지배적으로 나타났다.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일부 계층의 패션도 존재했다.
바지
1930년대 말까지도 바지는 단지 비치웨어나 작업복으로 입혀졌으나 전쟁 기간 동안 여자들이 일상복으로 바지를 많이 착용하게 되었고, 조드퍼즈라는 엉덩이에서 무릎까지는 품이 넓고 발목에서는 꼭 끼는 승마복 스타일의 바지가 유행하였다.
미국의 틴에이저 패션
1940년대 두드러지는 패션현상 중 하나는 틴에이저들의 패션 문화였는데, 넘쳐나는 틴에이저 잡지 중 <세븐틴>이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였다. 틴에이저들의 패션 문화 성립은 교육을 받는 10대가 늘어나면서 확립되었으며, 이들의 패션은 ‘밍스 모드’, ‘조나단 로건’이라고 불렸다. 학생들의 캐주얼한 의복이 사랑받게 되자 직장여성이나 30대의 여성들도 실용적인 이 의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캐주얼 웨어’가 탄생하게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캐주얼의복의 하나인 진은 아직도 노동자의 옷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브래지어와 페티코트
어깨를 드러내는 이브닝드레스를 위해 끈이 없는 브래지어가 나왔고 속치마나 팬티에 레이스를 장식하였다. 스커트를 퍼지게 하기 위해 페티코트를 두 개 또는 세 개 겹쳐 입거나 말털 심을 넣은 크리놀린이나 주름을 많이 잡아 부풀리게 하는 페티코트를 입기도 했다.
남성 복식
남성복에서 특별한 변화는 없었으나, 1930년대 말부터 1940년 초까지 더블 브레스트 재킷과 통이 넓은 바지로 이루어진 수트가 유행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소속을 나타내기 위해 마크를 달거나 제복 종류의 의상을 입었다. 비슷한 모양의 제복 중에서도 유행이 생겨났는데, 카키색 울 소재의 더플코트가 그것이다. 몽고메리 장군의 더플코트로 불린 이 코트는 무릎길이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실루엣의 옷이었다. 1940년대 초기의 외투는 전부터 입어오던 체스터필드코트나 레인코트 등을 입었고 터틀네크 스웨터나 카디건이 인기가 있었다.
헤어스타일과 머리장식
헤어스타일은 앞머리는 뒤로 빗어넘기고 뒷목을 덮는 페이지보이 밥형에 끝 부분을 웨이브지게 하거나 위쪽으로 빗어 올린 형이 있었다. 1944년부터는 여성들이 모자 대신에 터번이나 스카프를 쓰는 것이 유행했는데, 스카프를 턱에서 매거나 머리꼭대기에서 매는 것은 공장 노동자들이 머리를 단정하게 하기 위해 스카프로 잡아매는 스타일과 비슷하였다. 여자 모자는 작은 베레를 많이 썼고 챙이 넓은 모자는 옆으로 기울게 썼다. 모자에 한 개의 깃털을 꽂거나 얼굴을 가리는 베일이 달린 보냇형의 모자도 있었다.
신발
구두는 둥근 앞부리의 중간 힐이 유행하였고 앞부리에서 발뒤꿈치까지 편평한 코르크나 나무창으로 된 웨지 타입의 구두가 전쟁 말기에 나타나 계속해서 수년간 유행하였다. 전쟁 중 미국의 패션 통제는 굽의 높이가 2.5cm였지만 영국은 5cm였다. 군대 제복의 영향으로 각진 스타일의 맞춤복과 쐐기 굽의 단화가 유행이었다. 물자가 부족하였으므로 싼 재료를 이용한 구두들이 많이 나왔는데, 삼베 같은 질긴 천으로 윗부분을 만들고 밑창에는 크레이프 고무를 사용하였으며 가죽 끈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다.
남성 구두의 패션은 수수하고 실용적이었으며 여성 구두와 같은 제약을 받지 않았다. 남성의 바지는 통이 넉넉해서 그에 맞추어 구두 역시 육중해졌고 브로그도 더 튼튼해졌다. 스팻과 각반은 1941년의 배급품에 올라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곱 가지 스타일의 데몹 구두가 등장했는데, 데몹이란 군대의 동원해제를 뜻하는 demobilization을 줄인 말로 전쟁이 끝난 것에 대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다섯 쌍의 구멍으로 구두끈을 매게 만든 이 구두는 옥스퍼드와 형태가 거의 비슷하였으며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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